Developers 2014.01.14 20:50

"훌륭한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 속담의 함정은 "훌륭한 목수는 자신들이 즐겨 사용하는 좋은 연장이 있다"는 점이다.


만약 "연장"이라는 것이 기량과 전혀 관계가 없다면 유명한 연주자들이 왜 수억 원 짜리 악기를 사겠는가?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왜 좋은 장비를 사용하겠는가? 

자신의 기량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기량에 영향을 주는 외적인 것들에 관심이 가게된다. 가령, 긍정적으로는 "나는 이 장비보다 더 좋은 걸 쓰면 성적이 더 나올 것 같아"라거나 부정적으로는 "나는 이 장비가 내 실력을 못 따라와서 성적이 더 이상 오르지 않아"처럼. 그러면서 결국 선수 자신의 기량이 올라갈 수록 장비도 함께 좋아지고, 결국 자신의 기량이 정점을 찍을 때 장비 또한 정점을 찍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개발자의 이야기를 해보자.

개발자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개발자의 PC와 관계된 CPU, 메모리, OS 등등부터 시작해서 개발자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이 있다. 이 글에서는 개발자와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장비들 중 키보드와 마우스에 대해서만 언급할 것이다.


Richard Stallman과 Bjarne Stroustrup은 해피해킹을 즐겨쓴다. 사진을 보면 뭔가 키가 많이 빠진 듯한 흰색 키보드가 해피해킹이다.

(나 같은 경우는 주로 Windows 환경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방향키가 없는 해피해킹은 업무시간엔 쓸 수가 없는 제품이다... 언젠가 *NIX 환경에서 작업을 하게 된다면 하나 질러볼 생각이다.)


스택 오버플로우의 공동 창립자이자 Coding Horror를 운영하는 Jeff Atwood는 심지어 자기 입맛에 딱 맞는 CODE라는 키보드를 만들어버렸다. 키보드의 이름은 Jeff Atwood가 좋아하는 Charles Petzold의 명서 CODE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Jeff Atwood는 확실히 나와 생각이 비슷한 것 같다. 그의 책 코딩 호러의 이펙티브 프로그래밍을 읽어보면, 그가 듀얼모니터, 빠른 PC, 키보드/마우스, 편안한 의자등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편안한 의자는 가격이 ㅎㄷㄷ하다는 허먼밀러다. Jeff Atwood가 언급한 것들 대부분을 가지고 있지만 허먼밀러는 내 연봉으론 무리다... ㅠㅠ 그냥 나중에 시디즈나 하나 사야지...)


이제 나의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나는 소위 "장비빨"로 생산성이 1%라도 오를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장비를 지르는 성격이다.

아래의 사진은 내가 회사와 집에서 번갈아서 사용하는 리얼포스 87 키보드와 Razer Naga 게이밍 마우스이다.

원래는 리얼포스 87 블랙과 Razer Naga 푸른색 한 쌍만 가지고 있었는데 출퇴근 하면서 들고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한 쌍을 더 사서 집에서만 쓰고있다. 사실 개인 프로젝트를 하려고 야심차게 장만했는데 거의 인터넷 서핑용으로만 쓰고 있다... (언젠가는 빛을 보겠지...)

요즘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서 좋은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문점이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키보드 말고 마우스도 쓸 데 없이(?) 화려한 것을 쓴다. 내가 쓰는 마우스는 사실 WOW같은 MMORPG에서 스킬을 쓰기 쉽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마우스이다. 마우스 좌측에 총 12개의 버튼이 달려있는데, 각 버튼을 누르면 스킬이 발동되는 형태로 게이머들이 많이 사용한다.

개발자들은 개발하는 도중에 마우스를 자주 사용하는 것을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개발하는 도중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갈아 가면서 조작하다보면 코딩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못 따라잡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주로 사용하는 OS와 IDE는 마우스가 없으면 작업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인터넷을 쉴 새 없이 찾아보면서 코딩을 해야되기 때문에 마우스 조작없이는 코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게이밍 마우스이다. "마우스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 하다면 마우스에서 최대한 손을 안 떼고 최대한 많은 작업을 마우스만으로 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무시무시한 개수의 버튼이 붙어있는 Razer Naga 게이밍 마우스였다. 이 마우스에는 일반적인 마우스보다 버튼이 14개 더 붙어있다(좌측 12개 + 왼쪽 버튼 좌측에 2개). 나는 이 버튼들에다가 단축키나 매크로를 지정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코드를 네비게이션할 때나 인터넷 서핑시에 키보드 + 일반마우스 조합을 사용할 때의 속도를 게이밍 마우스 하나만으로 따라잡고있다.



위에서 언급한 키보드/마우스는 작업하는데는 최고의 성능을 내지만 덩치가 크기 때문에 휴대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출장/외근/카페에서 작업할 때는 속터지는 노트북 키보드와 트랙패드로 작업을 했었다. 그러다가 작년에 레오폴드에서 FC660C라는 정전용량무접점 방식의 "방향키가 달린"(이게 가장 중요하다) 미니키보드를 출시하자마자 구매했다. 그래서 요즘 밖에서는 노트북 + 미니키보드 조합을 사용한다.

근 3년 동안 이 정도의 장비를 모으게 되었고 여태껏 전혀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사실 미니키보드 사고 나서 키가 손에 안 익어서 적응할 때까지 좀 후회하긴 했다...)

하루종일 키보드랑 마우스 붙잡고 앉아서 입에 풀칠하고 사는데 적어도 하루종일 붙잡고 있는 것들이라도 좋은 것들로 맞춰야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렇게 비싼 장비들을 사는 걸보고 돈지랄한다는 사람들도 있긴하다. 나도 사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몇십만원 짜리 키보드를 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이렇게 비싼 것들을 쓰는 건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호기심에 리얼포스를 처음 구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이제 리얼포스가 아니면 타이핑을 하기가 싫어질 정도가 되었다. 단순히 키감이 좋아서 또는 손이 편해서만이 아니다. "키보드를 타이핑하는게 느낌이 너무 좋아서 코딩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이 정도의 동기부여만 된다고 해도 적어도 1% 이상의 개발 생산성은 오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신고

'Developers'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훌륭한 목수(개발자)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  (9) 2014.01.14
Trackback 1 Comment 9
  1. juliod 2014.10.29 01:40 신고

    와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저도 장비 정말 좋아하는데요.
    그런데 게이밍 마우스에는 어떤 단축키를 저장해서 쓰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2. simplylife 2014.12.29 10:10 신고

    ㅎㅎ 연장이 좋으면 일할때 조금 더 즐겁죠. 많이 공감합니다. :-)

  3. varomango@gmail.com 2015.06.05 11:56 신고

    멋있어요 ^^
    재밌게 읽었습니다!!

  4. 장성철 2015.09.16 23:22 신고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5. 2015.11.29 04:19 신고

    생각하는 속도가 코딩 속도를 앞지르다니;;
    손 움직이는게 거북이 걸음보다 느리거나, 21세기 최고의 천재신가보네요

    • 지나가는사람 2016.01.14 15:56 신고

      말은 곧 인품입니다. 비꼬여있는 인격보다 것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딱 본인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글 내용인듯하여 안타깝네요.. 한번 생각해보셔요..

  6. 지나가는사람2 2016.03.08 18:55 신고

    헐 댓글다는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를 앞지르셨네요.
    생각하는게 거북이 걸음보다 느리거나, 21세기 최고의 댓글러신가보네요

  7. 맨발 2016.04.17 08:13 신고

    공감하고 갑니다 ^^ 초심자로서 도움이 많이 되었네요

  8. 재미있네 2016.05.15 03:55 신고

    ㅋㅋㅋㅋㅋㅋ 생각하는 속도가 당연히 코딩 속도를 앞지르지
    그럼 코딩 속도가 더 빠르니 생각이 따라올 때까지 손은 멈춰있어야겠네 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구만.
    기계식 키보드를 프로그래머가 쓰기 시작할 때에는
    생각한 건 머리 속에 엄청 쌓여 있는데 손 속도가 아무리 빨라봐야
    코드 상으로 칠 때는 최대치로 800~850 정도 나오는데
    ( 어디서 또 천타나온다고 그런 소리 마시고 )
    머리 속에 쌓이는 게 더 빠른 속도니까 답답해서 기계식을 쓰는거지.

    어지간히 실력 없나보다. 머리에 코드 몇 천줄 큐에 쌓아놓고 두들겨본 경험도 없나보네.